그날 밤 소돔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날 밤 소돔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김기대
  • 승인 2021.10.08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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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으로 읽는 창세기(1)

아르메니아 출신 수사 소시스트라토는 기둥 위에서 은거하며 수도하는 기둥 수도사 소속인데 이들은 자신들의 수행이 세계의 멸망을 막는다고 생각하는 집단이다. 중에서도 소시스트라토는 가장 영성이 뛰어난 수사였다. 어느날 마귀로 변장한 방랑 수사가 그를 방문해 롯의 아내가 소금 기둥안에서 아직도 살아 있다는 놀라운 소식을 전해준다. 불쌍한 아내의 영혼을 구원하겠다는 생각에 길을 나선 소시스트라토는 소금 기둥 앞에 서게 되고 그의 영성과 기도로 마침내 소금이 녹자 여인은 소금기둥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소금기둥 (레오폴도 루고네스, 바다출판사, 2010)
소금기둥 (레오폴도 루고네스, 바다출판사, 2010)

자유의 몸이 롯의 아내에게 소시스트라토는 그날 뒤를 돌아보았을 무엇이 보였냐고 묻는다. 불타는 마을에 화염 말고 뭐가 있었다고 계속 궁금해 하는 그의 채근에 지친 롯의 아내가 수사의 귀에 대고 뭐라고 말을 하는 순간 수사는 번개에 맞아 죽고 만다.

레오폴도 루고네스의 소설소금 기둥 줄거리다. 허무한 결말이다. 롯의 아내가 무엇을 보았는지가 수사에게는 궁금했으며, 롯의 아내는 한사코 대답을 거부했으며 , 대답을 들은 수사는 번개를 맞아 죽어야 했는가? 작가는 끝내 귓속말의 내용을 전하지 않는다.

 

롯의 아내는 죄가 없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본문을 사용한 설교의 99%롯의 아내를 기억하라 제목 아래 소돔의 삶을 잊지 못해 뒤돌아 보았던 그를 책망하는 내용으로 이루어 졌다.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고 돌아보았던 행위는세속적인 것에 대한 미련' 대한 경고다. 예수도 직접 롯의 아내를 기억하라고 경고했다(누가복음 17:32). 전쟁통에 고향에 대한 미련과 남겨 재산 때문에 머뭇하다가 이산가족이 경우처럼, 롯의 아내는 생활을 그리워 했다가 저주의 소금 기둥이 되고 말았다고 우리는 들어 왔다.

정말 롯의 아내는 욕망의 화신이었을까? 누가복음 17장도 상황의 급박성을 설명하기 위해 롯의 아내를 소환했지 욕망과는 거리가 있다. 롯의 아내를 욕망으로 이해하려면 이전의 창세기 본문에서 롯의 아내의 욕망이 번쯤은 복선으로 제시되어야만 했다. 예를 들어 아브라함과 롯이 땅을 나누던 장면(창세기 13)에서 많은 땅을 욕심내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욕망과 롯의 아내 사이의 등호가 성립한다. 어떤 사람인지 조금의 실마리도 없는 상태에서 하물며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고 창세기 19장에 처음 등장하자마자 소금 기동이 롯의 아내를 저주 받아 마땅한 인물로 낙인찍는 것은 잔인하다. 돌아 보았는지, 정말 욕망덩어리였는지 확인 조차 여인에게 동안 우리는 신앙의 이름으로 폭력을 행사해 왔다.

소돔에는 욕망의 잉여물만 남아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함께 정을 나누었던 이웃들도 있었을 터인데 롯의 아내는 그들의 죽음이 안타까워 돌아 보았을 수도 있다. 종말의 날에 선택받은 사람들이 휴거의 공간에서 극강의 고통을 겪는 땅의 사람들을 내려다 보면서 안도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구원이 아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해탈에 이를 때까지 해탈을 유보한다는 것이 보살행의 기초가 아닌가?

이야기에는 롯의 가족을 제외하고 모두 남자만 등장하는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천사도 남자, 천사를 내어 놓으라는 주민들도 남자, 롯도 남자다. 남자들이 만드는 폭력의 현장에 여성들은 함께 희생된다. 겨우 그곳을 빠져 나온 롯의 아내까지 희생되는 장면에서 불순종과 저주만을 읽어낸다면 상상력의 부족 또는 남성 중심의 해석이라고 말할 밖에 없다.

소돔의 죄악이 동성애 때문이라는 것도 남성중심적 세계관에 기인한다. 남색 또는 항문 성교를 의미하는 소도미(Sodomy)라는 단어가 소돔으로부터 나왔고. 가학성 변태 성애의 뜻을 가진 사디즘의 어원인 사드의 대표작이소돔 120 것을 보면 소돔과 성적 타락, 특히 동성애를 원인으로 보는 전통은 오래 되었다.

그런데 만약 천사가 여성들이고 마을 주민들이 여성 천사들을 성적 대상으로 내어 놓으라고 했으면 죄가 탕감되어 멸망을 면하는가? 이렇게 번만 뒤집어서 질문해도 말이 되는게 동성애 원인론이다.

소시스트라토도 점이 궁금했을 것이다. 멸망의 진실도 궁금했고 그깟 뒤돌아 보지 말라는 명령 하나 어겼다고 죽지도 못한채 소금기둥에 갇혀 있는 형벌이 한국 사회에서 익숙한 용어가 되어버린양형기준에도 맞지 않는다. 차라리 한에 사무쳐 구천을 떠도는 원혼이 자유로울 있다. 빌라도의 한이 구천을 떠돌다가 안착한 곳이 스위스의 유명 관광지 필라투스산이라는 전설이 훨씬 잔인하다.

 

소돔 사람들이 분노한 이유

문제의 원인을 굳이 찾으려면 롯을 세밀히 살펴보아야 한다. 천사를 내어 놓으라고 협박하는 소돔 사람들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마을 사람들은 나그네살이를 하는 주제에 재판관 행사를 한다며 롯에게 덤벼든다(창세기 19:9). 창세기 13장에서 땅을 나눌 아브라함은 지역의 분배에 영향을 행사할만한 유력자였을 것이다. 롯은 덕에 소돔지역의 땅을 차지했고 소돔 사람들에게는 눈엣 가시일 밖에 없다.

게다가 낯선 천사들까지 찾아오니 그들의 치솟은 두려움은 다른 희생양을 향한 분노로 옮아갔다. 딸을 내어 놓겠다던 롯의 제안을 소돔사람들이 흘려 들었던 것도 같은 이유다. 딸들은 이미 소돔 지역에 가정을 가지고 있었던 반면 천사들은 새로운 침략자로 보일 밖에 없었다. “선교사들이 아프리카에 왔을 그들은 성경을 가지고 있었고 우리는 땅을 가지고 있었다. 선교사들이 ‘기도 합시다’ 하기에 우리는 눈을 감았다. 눈을 뜨고 보니 우리는 성경을 가졌고 그들은 땅을 가졌다”는 투투 주교의 유명한 말을 패러디 하면 이렇게 된다.  “아브라함이 기도하자고 해서 눈을 감았다 보니 우리는 엘로힘을 믿고 있었고 그는 땅을 가져갔다.”

천사 대신 딸을 내어 놓는 것이 당시 환대의 전통에 포함되어 있었다고 하는 분석도 있지만 그들은 분노에 주민들이지 나그네가 아니다. 롯은 그들의 분노의 원인을 보다 깊이 살펴야 했다. 그런 점에서 남편이 있는 딸을 분노를 진정시킬 도구로 내놓으려는 롯의 결정은 성급했다.

특히 점은 다음 장인 창세기 20장과 대비 된다.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에게 자신의 누이라고 속이고 사라를 바침으로써 위기를 모면하려 하지만 하나님은 사라를 보호한다. 오히려 아비멜렉은 다음 아침 아브라함에게 당신이 아내를 누이라고 해서 내가 저주를 받을 했다며 용서를 빈다. 아브라함의 행위가 위협에 의한 것인지 아비멜렉과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행동인지 없지만 어떤 것이 되었건 하나님은 그것을 막았다. 아비멜렉이 저주를 벗어났을 아니라자신의 목적을 위해 아내를 이용하는 아브라함이라는 오명으로부터도 아브라함을 지켰다.

롯은 천사들이 분노해서 마을을 불사르겠다고 하자 자신들은 작은 도시 소알(Zoar : 하찮은) 가서 살게 해달라고 천사들에게 부탁한다. 롯은 작다는 말을 여러 반복해서 강조한다. 지역도 롯이 작다고 하여서 소알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이것은 창세기 저자의 착오다. 이미 13장에서 소알은 언급되고 있다.

 

롯이 멀리 바라보니, 요단 들판이, 소알에 이르기까지, 물이 넉넉한 것이 마치 주님의 동산과도 같고, 이집트 땅과도 같았다. 아직 주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시기 전이었다.(창세기 13:10)

 

본문이 지적하듯이 지역은 주님의 동산처럼 아름다운 곳이었고 지명이 있던 곳이었다 재앙의 현장에서 지난 날을 후회하는 롯은 이제부터작고 하찮게 ‘(소알) 살겠다고 호소하면서 천사의 처분을 기다렸다.

호소와 달리 롯은 소알에도 살지 못했고, 동굴에 숨어살다가 구약의 역사 속에서 이름은 사라지고 만다. 어떤 두려움이 롯을 동굴로 이끌었을까? 소돔에서 지역 주민과의 불화가 소알 지역에도 알려져서 배척당한 것은 아닐까?

 

롯의 아내를 기억하라

 

에드먼드 리치는성서의 구조 인류학에서 롯의 아내를 이렇게 설명한다.

 

이름도 주어져 있지 않고 선조들 누구와도 족보에 관련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롯의 아내는 나중에 천사로 드러나는 사람의 이방인과 같은 자질을 보이는 것이다. 롯의 아내가 자신의 운명에서 획득하는 신격화는 그리스로마의 신화에서 등장하는 어떤 인물들의 신격화와도 다른 것이다. (331)

 

롯의 아내는 소돔과 다음 세계(소알, 암몬, 모압) 잇는 제물이 것이고 부족이 평화의 조약을 맺을 소금을 사용한 전통과도 맥을 같이 한다. 따라서 롯의 아내를 욕망의 화신으로 기억하기 보다는 세계 사이에 화평을 가져온 천사같은 존재로 기억해 주는 역설적 읽기도 시도해봄직 하다.

소설소금 기둥에서 소시스트라토는 롯의 아내로부터 무슨 이야기를 들었을까? 분명 천기누설에 상응할만한 이야기를 들었기에 천벌(천둥) 받아 죽었을 것이다. 레오폴도 루고네스는 이렇게 쓴다.

 

그런 잠을 방해하려는 소시스트라토의 시도는 경솔하지 않았을까? 저주받은 여자의 죄가 그녀를 구하려고 애쓰는 분별없는 남자에게 떨어지지 않을까? 불가사의를 밝히려는 것은 범죄적 광증이고 아마도 지옥의 유혹일 있다.

 

하나님의 저주가 과하다고 생각한 수사의 집착이 화를 불렀다. 구도는 톨스토이의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나오는 미하일 천사의 이야기와 비슷하다. 가난한 아이의 엄마의 영혼을 거두어 오라는 하나님 명령에 불순종했다가 하늘에서 쫓겨난 미하일은 훗날 하나님의 신비를 이해하게 된다.

어쨌든 저자도 피해간 귓속말의 비밀은 계속 궁금하다. 독자들도 맞춰보자. “나는 실제로 천사였지요”. “그날 소돔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멀리서 보이는 불길은 마치 에덴동산에 다시금 돌아오지 말라고 지키는 화염검과 같은 것이었어요”. 나는 번째같다.

소돔은 이상 살기 힘든 경쟁과 착취와 폭력이 난무하던 현장이었고, 사회의 생존 문법을 터득해 살아가던 롯의 인생은 하나님의 방식과 어긋났다. 천사들의 등장으로 자신을 깨달은 롯은작은것을 내세움으로서 천사들이 마음을 얻었고, 아내는 세계의 화해를 위해 자신을 던졌다.

경쟁과 착취에 편승해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롯과 같은 깨달음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사회의 모순 구도 속에서 승리자로 살아가라고 부채질하는게 교회다.

소돔과 고모라, 존 마틴 1852년
소돔과 고모라, 존 마틴 1852년

구원해 천사도 없고 세계를 이어줄 롯의 아내도 없는 현대인은 각자 도생할 밖에 없다. 그래서 슬프다.

 

레오폴도 루고네스 (Leopoldo Lugones)

1874 스페인의 코르도바에서 태어나 1896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강경 사회주의자로 명성을 얻었으나 갈수록 서정적 국수주의자로 변했다. '황금 산맥'을 비롯해 여러 대표작이 있으나 우리 말로는 단편집 '소금기둥'(조구호 옮김, 바다출판사, 2010년)만 번역되어 있다. 1930년에 아르헨티나 젊은 지식인들이 국수주의자로 변모해가는 루고네스에게 반기를 들자, 고뇌하며 말년을 보내다가 결국 1938 2 19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생을 마감했다.

 

<<기독교 세계관의 시원이 되는 창세기를 철학, 문학, 영화 통해 인문학적으로 해석해 보는 것이 연재의 목적입니다. 정통 신학적 해석과는 거리가 있다는 점에 대해 독자들의 이해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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