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개신교, 이 수치의 기억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을까?

  • 기사입력 2025.02.22 06:42
  • 최종수정 2025.03.28 05:42
  • 기자명 글벗

이창일의 『수치, 인간과 괴물의 마음』은 수치(shame)라는 감정이 인간됨의 핵심 요소임을 강조한다. 그는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 부끄러움을 아는 존재라는 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대 한국 사회에서는 수치심이 넘쳐나면서도 본질은 점차 희미해지는 모순된 현실이 펼쳐지고 있다. 한국 사회는 ‘죽은 부끄러움의 사회’이면서 동시에 ‘수치 중독 사회’라는 것이다.

수치심은 본래 부정적인 감정이지만, 사람들은 이에 강하게 반응하며 때로는 중독되기도 한다. 타인을 비판하고 조롱하는 문화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도덕성을 확인하거나 소속감을 느끼기 위해 ‘수치 주기’에 참여한다. 반대로, 스스로 수치심을 느끼며 더욱 사회적 규범에 집착하게 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현대 사회는 수치심을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조화된 감정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사람들은 이에 중독된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 결국 수치를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수치를 소비하고 생산하는 문화가 자리 잡게 것이다.

이러한 ‘수치 중독’ 현상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공간 하나가 바로 한국 개신교이다. 성경에서 아담과 이브가 금단의 열매를 먹고 처음 경험한 감정이 수치였다는 점은,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 인간됨의 시작임을 시사한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에덴에서 쫓아내면서도 그들의 안전을 보장해 주었다. 이는 인간이 수치를 경험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수치를 경험한 자로서, 타인에게 수치를 주는 것은 결코 정당화될 없다.

그러나 한국 개신교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일단 살고 보자’는 생존 본능에 의해 수치심을 잊어버렸다. 일제강점기, 해방, 한국전쟁, 독재를 거치면서 개신교는 일종의 보호막 역할을 하게 되었고, 결과 신앙은 타인을 외면한 자신만 살아남는 도구로 변질되었다. 신앙의 이름으로 약자와 소수자를 비판하며 자신이 그들과 다름을 강조하는 태도가 자리 잡았다. 결국, 개신교는 종주국이라 있는 미국에 의존하는 것이 신앙과 동일시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한때 한국 개신교는 민주화 운동의 중심에서 사회적 정의를 외쳤으나, 오늘날에는 반공주의와 국가주의, 그리고 경제적 번영을 앞세운 극우적 집단으로 변모했다. 물질적 축복을 신앙의 증거로 삼는 번영신학(Prosperity Gospel) 강조되면서, 신앙은 윤리적 수치를 극복하는 도구가 아니라 탐욕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전락했다. 신자들은 교회의 부패와 지도자들의 사치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하나님의 축복’이라 여기며 적극적으로 옹호한다. 또한, 신앙의 이름으로 극렬 시위를 벌이며, 과거 독재 시절 탄압받던 이들이 이제는 혜택을 받은 자로서 자유를 탄압하는 모순을 인식하지 못하는 모습도 보인다.

나아가 신앙을 타인을 공격하는 도구로 여기면서 정치적 선동과 극우적 이데올로기를 신앙과 결합하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한국 개신교가 본래의 신앙을 회복하려면, 먼저 자신들의 부끄러움을 인정해야 한다.

신앙의 회복은 수치를 아는 데서 시작된다

한국 개신교가 본래의 신앙을 되찾으려면 먼저 자신의 부끄러움을 직시해야 한다. 교회 지도자들은 부패와 탐욕을 성찰하고 진정한 회개에 나서야 한다. 신자들은 신앙이 타인을 공격하는 도구가 아니라 자신을 낮추는 겸손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정치적 선동과 극우 이데올로기를 신앙과 엮는 행태로부터의 신속한출애굽 요구된다. 잘못됨을 인정해야 한다. 신앙의 본질은 수치를 마주하는 있다. 이제라도 부끄러움을 아는 신앙으로 돌아가야 한국 개신교는 잃어버린 정체성을 회복할 있을 것이다.

사진 출처 : 민중의 소리

 

 

이창일은 책중에서 이렇게 말한다.

염’은 세심하게 살핀다는 뜻이 있다. “임금이 살피지 않아서 변고가 생긴다(인군불염이변人君不廉而變). 《관자》 〈정세〉: 여기서 염은 찰察(살피다)이나 사査(조사하다) 뜻이다. 그러면 염치는 ‘부끄러움을 살핀다, ‘부끄러움을 성찰한다, ‘부끄러운 상황을 안다’는 뜻이다. 따라서 염치가 없다는 것은 ‘부끄러움을 알지 못한다’의 뜻이 된다. 또한 염치는 ‘무엇이 부끄러운 알고 행동을 절제한다’는 의미도 포함한다. 자기반성과 자기교정의 의미가 담기는 것이다. (이창일, 수치, 인간과 괴물의 마음, 추수밭)

 

이거야말로 성숙한 신앙의 태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꼬리를 무는 독서일기 지난 주제 : 극우세력

꼬리를 무는 독서일기 이번 주제 : 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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