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미국에서 흑인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 사건을 계기로 전국적으로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확산되던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군대에 시위 진압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마크 밀리 미 합동참모본부 의장은 이 명령에 따르지 않고, 오히려 미군 지휘관들에게 서신을 보내, 미군의 핵심 임무가 대통령의 지시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수정헌법이 보장하는 기본 권리—종교, 언론, 청원, 출판, 집회의 자유—를 수호하는 것이라고 명확히 했다.
밀리 의장은 2023년 9월, 44년간의 군생활을 마치며 전역식을 가졌다. 그는 이 자리에서 “사람이 아닌 헌법에 충성한다”는 말을 남겼으며, 군인으로서의 사명이 권력자에 대한 복종이 아닌 헌법적 가치를 지키는 데 있음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그의 행보는 군대가 민주주의의 수호자로서의 역할을 잊지 말아야 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우리는 왕이나 여왕, 폭군이나 독재자에게 충성을 맹세하지 않으며, 독재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에게도 충성을 맹세하지 않는다. 우리는 또한 개인에게 충성을 맹세하지 않는다. 우리는 헌법에 맹세하고, 미국이라는 개념에 맹세하며, 그것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다.
2025년 대한민국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는 말로 자신들의 범죄를 벗어나려는 장성급 군인들을 비롯한 여러 군상들을 보고 있다. 에밀리 캐스파의 '명령에 따랐을 뿐'- 복종하는 뇌, 저항하는 뇌(이성민 옮김, 동아시아)는 인간이 얼마나 쉽게 권위에 굴복하는지, 그리고 그 굴복이 얼마나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날카롭게 파헤친다. 이 책은 단순한 심리학적 분석을 넘어,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드러낸다. 특히, 대한민국의 불법 계엄 사태와 이를 주도한 사령관들의 행적은 캐스파의 주장을 그대로 증명하는 사례다. 그들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말하지만, 그 말은 결코 그들의 죄를 덮어줄 수 없다.
캐스파는 책에서 스탠리 밀그램의 복종 실험(실험 참가자들을 교사와 학생으로 나누어 학생들이 오답을 내면 전기 충격을 가하는 방식으로 교사역을 맡은 실험자들은 틀릴 때마다 전기 충격기의 강도를 증가시킨다. 전기 충격이 학생역을 맡은 사람들에게는 전해지지 않지만 그들의 고통받는 연기를 보며 선생역을 맡은 이들은 별다른 가책감없이 충격기를 작동시키는 실험)을 언급하며, 인간이 권위 앞에서 얼마나 쉽게 도덕적 판단을 포기하는지를 보여준다. 실험 참가자들은 권위자의 명령에 따라 무고한 사람에게 전기 충격을 가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이는 인간이 얼마나 쉽게 ‘명령’이라는 이름으로 악에 가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충격적인 결과다.
대한민국의 불법 계엄 사태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당시 사령관들은 상부의 명령에 따라 헌법을 유린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짓밟았다. 그들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말하며 자신의 죄를 덮으려 했다. 하지만 그 말은 거짓이다. 그들은 명령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 명령을 실행하는 데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그들은 권위에 복종하면서도, 동시에 그 권위를 유지하고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
캐스파는 복종이 단순히 권위에 대한 순종이 아니라, 도덕적 책임의 포기라고 지적한다. 사령관들은 명령을 받았다는 이유로 자신의 도덕적 판단을 포기했다. 그들은 국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저버리고, 오히려 국민을 억압하는 데 앞장섰다. 이는 단순한 복종이 아니라, 도덕적 파산이다. 그들은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명령’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하지만 명령은 그들의 죄를 덮어줄 수 없다. 나치 전범들도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말했지만, 그들은 결코 무죄가 되지 못했다.
캐스파는 명령자들이 명령을 내릴 때 그들의 뇌가 어떻게 자동하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명령자들의 뇌는 권위의 인지적 편향을 통해 자신의 명령이 정당하다고 믿도록 작동한다. 이는 뇌의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과 관련된 부분에서 발생하며, 도덕적 판단을 흐리게 만든다. 또한 그들의 뇌에서는 책임의 전가와 도덕적 해리도 발견된다. 명령자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하위자에게 전가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뇌의 편도체(amygdala)와 같은 감정 조절 부위가 작용하며, 죄책감이나 불안을 줄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동시에 자신의 행위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거나 왜곡하는 방식으로 뇌가 작동한다. 이는 뇌의 보상 체계(reward system)와 연결되어, 권력을 행사하는 것 자체가 쾌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윤석열의 뇌에서 이러한 것이 정확하게 작동하는 것을 전국민이 TV로 시청했다.
캐스파는 책에서 저항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논의한다. 그녀는 일부 개인들이 권위에 맞서 도덕적 판단을 유지하고, 비윤리적인 명령을 거부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저항은 개인의 도덕적 각성과 사회적 책임감에서 비롯된다. 저항하는 뇌는 권위의 압박 속에서도 자신의 양심을 지키고, 더 큰 사회적 정의를 위해 행동할 수 있다.
에밀리 캐스파의 '명령에 따랐을 뿐'- 복종하는 뇌, 저항하는 뇌는 권위에 대한 인간의 복종 심리를 깊이 있게 분석하며, 동시에 저항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는 대한민국의 불법 계엄 사태와 깊이 연결되는 주제다. 우리는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권위에 대한 맹목적 복종을 경계하고, 도덕적 각성을 일깨워야 한다. 복종은 배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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