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효 안보실 차장이 윤석열의 체코 방문당시 공항에서 열린 의전 중에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아 논란이 되었다. 야당에서 해임을 촉구하자 용산 대변인실은 입장문을 발표하고 "김태효 제1차장이 체코 순방 공식 환영식에서 애국가 연주 시 가슴에 손을 얹지 않은 이유는 우측 전방의 국기를 발견하지 못해 발생한 착오"라고 밝혔다.
이 해명도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변명이 말도 안되지만 보통의 경우 논란 당사자가 형식적으로라도 사과를 하면 그가 속힌 조직이 뒤를 수습하는데 이번에 당사자 김태효는 침묵했고 대변인실이 먼저 수습에 나섰다. 윤정부의 실세며 일본 정부의 ‘밀정’이라는 세간의 소문을 확인해준 것으로 의심받을 수 있는 대목이다.
태극기는 1882년(고종 19년) 조미수호통상조약에서 최초로 사용했으며 1883 조선의 정식 국기로 고종이 공포했다. 일제 강점기동안 임시정부가 테극기의 적통을 계승하다가 1946년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게양되었다. 처음에는 남북이 같은 국기를 썼으나 1947년 이후 북한은 태극기를 폐지했다.
북에 주둔중이던 소련의 레베데프는 김두봉(최고 인민회의 상임위원장, 한글학자)을 불러 새로운 국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대종교 배경을 가진 김두봉은 태극기가 가진 철학적 의미를 역설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김두봉은 이듬해 ‘신국기의 제정과 태극기의 폐지에 대하여’라는 책을 썼다. 한국 전쟁을 거치면서 태극기와 인공기는 각자의 길을 갈 수 밖에 없었다.
전쟁이 아닌 형태로 태극기와 인공기가 충돌한 곳은 2012년 런던올림픽이었다. 북한과 콜롬비아의 경기 시작 전 전광판에 소개된 북한 측 선수들 사진 옆에 태극기가 표시되는 실수가 발생했다. 북한측의 거센 항의로 경기가 2시간 정도 지연되었다가 조직위원회측의 사과로 경기가 겨우 열렸다. 이날 경기에서 북한은 콜롬비아를 2:0으로 이겼다. 이번에 북한이 우승한 20세 이하 여자 월드컵 경기가 열린 곳은 콜롬비아다. 아마도 주최측은 12년 전의 그 사건을 기억하면서 의전에 만전을 기했으리라.
대한민국에서 인공기만큼 거부감을 느끼는 깃발은 일장기, 그중에서도 욱일기다. 1965년 한일 수교 이후 일본의 고위직이 한국을 방문한 일이 여러 차례 있었으므로 일장기는 국가 의전상 서울 시내에서 펄럭인 적이 있다. 당연히 호텔에는 상시로 펄럭인다. 그러나 일본 군국주의 상징인 욱일기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게 국민 정서다.
2018년 일본 해상자위대가 10월10~14일 제주도에서 열리는 한국 해군 국제관함식 참가를 포기했다. 한국 정부가 욱일기(旭日旗) 게양 반대 뜻을 밝히자 불참했던 것이다.
원래 규슈 지역에서 일부 무가의 문장으로 쓰였던 욱일(旭日) 의장이 일본군의 군기에 사용된 것은 메이지 일왕이 중앙집권적 통치체제를 구축하면서부터다. 1870년 병부성(이후의 육군성)이 ‘육군어국기(陸軍御國旗)’로 고안한 욱일기는 대원수에 오른 메이지 일왕이 근대적 육군 편제의 기간 부대인 연대(連隊)에 하사했다. 이후 욱일기는 ‘군기’로 명칭을 바꿨다가 해군에 의해 붉은색 원이 깃대 쪽으로 옮겨간 지금과 같은 형태의 ‘군함기’로 제정되기에 이른다. 그러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과 더불어 자취를 감췄다. 홍상현 ('게이자이' 한국 특파원), '시사인' 2018년 10 24
그러나 최근 미국의 주도하에 이루어지는 한미일 공동 방위가 점점 강화되자 욱일기의 문제가 다시 수면위로 떠 올랐다. 지난 23년 5월 윤정부 하에서 일본 해상자위대 호위함 하마기리함이 욱일기 비슷한 ‘자위함기’를 달고 부산 해군작전기지에 입항했다.
뉴라이트 계열의 인사들이 정부 요직에 나서면서 현정부의 친일 성향이 깊어지는 때에 김태효의 행위는 심각한 ‘불경’으로 볼 수 밖에 없다. 역사적으로 보면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 미국 선수들의 블랙 파워 경례가 국기 거부 사례로 유명하다. 미국의 육상 선수 토미 스미스와 존 카를로스가 시상식에서 금메달과 동메달을 수상한 후 미국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검은 장갑을 낀 손을 들어 블랙 파워 경례를 했다. 이는 미국의 만연한 흑인 차별과 그해 4월에 있었던 마틴 루터 주니어 킹 목사의 암살을 상기하는 행위였다. 2016년에는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사망한 조지 플로이드 사건에 항의해 미국 NFL 선수들의 국가 연주 중 무릎 꿇기 시위를 벌인 적이 있다. 두 경우 모두 국기가 상징하는 국가의 공권력에 항의하는 저항의 몸짓이다.
그런데 김태효는 왜 안했을까? 뉴라이트 계열의 인사들이 주도하는 식민지 근대화론 등을 현정부가 더 강력하게 추진하지 않아서? 그의 속마음을 알 수 없으나 역사적으로 보면 바이마르 공화국의 국기를 거부한 히틀러의 경우와 비슷해 보인다.
나치는 공화국의 깃발을 거부하고 과거 제국의 깃발로 돌아갔다. 나치는 1933년에 권력을 잡은 직후 검은색, 빨간색, 하얀색으로 된 삼색기와 나치의 십자가가 그려진 나치당 깃발을 모든 관공서와 독일 선박에 걸어야 한다는 포고를 발표했다. 2년 뒤, 이제 온 나라를 완전한 장악한 히틀러는 나치당 깃발을 독일의 유일한 국기로 정했다. 그리고 이 말을 법으로 규정한 뉘른베르크 국기법이 1935년 9월에 통과되었다. 팀 마셜(김승욱 옮김),'깃발의 세계사', 푸른 숲
예전부터 내려오던 제국의 상징이라고 주장하던 나치 문양 하켄크로이츠의 역사는 겨우 10여년 만에 역사에서 사라졌다. 그런 점에서 뉴라이트들은 ‘민주주의로 훼손된’ 보수의 가치를 재건하려는 것처럼 보이나 그것은 태극기와는 상관이 없다. 오히려 태극기가 그 위치를 잠시 잃었던 일제 강점기의 정서로 회귀하려 한다. 제 나라보다 타국(일본) 을 숭상하는가 매우 기괴한 보수다.
이런 보수 회귀의 사회적 흐름에 편승해 오세훈 서울 시장은 광화문 광장에 100높이의 태극기를 건립한다면서 여론을 살폈다. 국가주의라는 반대에도 고집을 꺽지 않더니 한국시간으로 9월 27일 갑자기 6.25 조형물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김태효 사태를 보면서 현정부의 실세들은 결코 태극기에 우호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간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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